신발 한 켤레에 담긴 200년의 역사가 현대적인 건축의 언어로 재해석됐다.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 사무소 ‘퍼셀(Purcell)’이 영국 서머싯(Somerset)주 스트리트(Street) 마을에 설계한 ‘슈메이커스 뮤지엄(Shoemakers Museum)’이 그 베일을 벗었다. 이 박물관은 세계적인 신발 브랜드 ‘클락스(Clarks)’의 탄생지이자 본거지인 이 지역의 유산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지그재그’ 벽돌 파사드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16세기의 고풍스러운 대저택과 17세기에 지어진 헛간(Barn)을 하나의 박물관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퍼셀은 두 역사적 건물 사이에 현대적인 ‘지그재그형 벽돌 확장동’을 배치하여 L자형 구조를 완성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건물 외벽의 독특한 벽돌 디테일이다. 설계팀은 클락스 신발의 상징적인 디자인 요소들을 건축적으로 번안했다. 신발 표면의 구멍 장식(브로그, Brogue)은 벽돌의 천공 기법으로, 신발의 스티치(Stitching)는 벽돌의 돌출과 후퇴를 반복하는 ‘코벨링(Corbelled)’ 공법으로 재현되었다.
퍼셀의 수석 건축가 알라스데어 퍼거슨(Alasdair Ferguson)은 “클락스의 디자인 언어를 섬세한 벽돌 디테일로 번역했다”며, “톱니 모양의 가장자리 장식(Pinked edges)을 층계형 벽돌 쌓기로 표현해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수제화처럼 느껴지도록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 신발과 화석, 지역의 정체성을 담다
박물관 내부 구성 역시 지역의 역사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새롭게 증축된 벽돌 건물에는 신발 전시실이 들어섰으며, 개보수된 17세기 헛간에는 이 지역에서 발견된 진귀한 화석 컬렉션이 전시된다. 본래의 대저택은 카페와 사무 공간으로 탈바꿈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특히 건축 과정에서 지속가능성과 지역색을 살리기 위해 현장에서 수거한 ‘블루 라이아스(Blue Lias)’ 석회암의 70%를 재활용했다. 이 석재는 화석의 흔적을 품고 있어, 건물의 재료 자체가 박물관의 전시 내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효과를 거두었다.
■ 지역 공동체의 자부심으로 자리매김
이번 프로젝트를 의뢰한 알프레드 길렛 트러스트(Alfred Gillett Trust)는 이 박물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스트리트 마을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건축가 퍼거슨은 “이 박물관은 200년 넘게 신발을 만들어온 수많은 세대의 이야기를 담는 집”이라며, “지역 사회가 자신들의 장인 정신과 유산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설계를 맡은 퍼셀(Purcell)은 최근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 리노베이션과 빅벤(엘리자베스 타워) 복원 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유산 보존과 현대 건축의 조화를 선도하는 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다.